카첸버그가 제안하는 창작 AI의 조건, 동의와 크레딧과 보상
제프리 카첸버그의 창작 AI 낙관론을 제작 기술의 역사와 노동의 손실, 창작자 동의·크레딧·보상이라는 조건으로 나누어 읽는다.
TL;DR
- 카첸버그는 창작 AI에 대한 기대와 예술가의 두려움을 함께 출발점으로 삼는다. 2023년에 내놓은 제작 시간·비용 최대 90% 절감 발언은 3년 안의 변화를 예상한 전망이다. 이번 글은 그 절감률을 달성했다는 실측 보고가 아니다.
- 새로운 제작 기술은 표현의 범위를 넓히면서 기존 일자리를 없애기도 했다. 유성영화의 등장과 DreamWorks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전환에서 이익과 손실은 같은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산업 전체의 성장이 개별 창작자의 생계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 도구가 바뀌어도 관객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지 판단하는 일이 남는다는 것이 카첸버그의 관점이다. 그는 추론과 창작을 구분하며 취향과 직관, 표현 의도를 인간 창작자의 기여로 본다. 이 구분은 AI와의 대화에서 가져온 설명이며 과학적으로 입증한 능력의 경계는 아니다.
- 그가 제안하는 협력 조건은 창작자를 처음부터 참여시키고 동의와 크레딧, 보상을 보장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는 AI를 없애려는 논쟁보다 사용 조건의 협상에 참여하라고 요구한다. 작품과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론도 이런 조건을 어떻게 정하느냐와 함께 읽어야 한다.
같은 영상을 보고 느낀 기대와 두려움
제프리 카첸버그는 실리콘밸리에서 AI로 만든 애니메이션 장면을 보고 1986년 Pixar의 《Luxo Jr.》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감탄을 느꼈다. 같은 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예술가는 비슷한 영상을 본 뒤 자신의 일과 업계가 끝나는 것인지 물었다. 카첸버그는 그 두 반응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창작자의 저항에는 한 장면을 거듭 고치며 쌓아 온 숙련과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이 들어 있다.
그는 할리우드의 제작 책임자였고 지금은 WndrCo를 통해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창작 현장과 기술 투자 양쪽에 관계와 이해관계가 있는 위치에서 이 글을 썼다. 2023년에는 AI가 3년 안에 고품질 애니메이션의 제작 시간과 비용을 최대 90% 줄일 것이라고 전망해 반발을 샀다. 이번 글에 그 수치를 입증할 제작비 비교나 작업 시간 데이터는 없으므로 전망과 확인된 성과를 구분해야 한다.
예술의 확장과 일자리의 손실은 함께 일어났다
카첸버그가 먼저 꺼내는 역사적 사례는 존 필립 수자의 축음기 비판이다. 수자는 1906년 글에서 기계 음악을 경계했고 자신의 곡이 사용돼도 작곡가가 대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와 싸웠다. 카첸버그는 그 활동을 1909년 미국 저작권법의 변화와 연결한다. 기술을 멈추는 데 실패한 이야기보다 창작물을 이용하는 조건과 돈의 흐름을 바꾼 이야기로 읽는다.
유성영화의 등장은 다른 종류의 손실을 드러낸다. 한 번 녹음한 연주를 여러 극장에서 재생하면서 무성영화 상영 때마다 연주하던 극장 음악가의 일이 사라졌다. 동시에 영화 음악과 뮤지컬, 음향 설계와 오디오 엔지니어링의 가능성은 넓어졌다. 카첸버그는 사라진 극장 일자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새로운 예술과 산업이 커졌다는 설명만으로 전환기에 손해를 본 사람의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디지털 제작으로 바뀌어도 남은 판단
카첸버그가 1980년대 중반 Disney에서 마주한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많은 수작업 셀과 촬영 공정에 의존했다. 그는 한 편에 12만 5천 장의 셀을 사용하고 수정 비용을 달 단위로 치르던 과정을 회고한다. 이런 제약은 제작비뿐 아니라 시도할 수 있는 이야기와 장면에도 영향을 줬다. Disney의 기록에서 그가 다시 발견한 기준은 연필이나 붓의 보존보다 관객이 등장인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믿느냐는 문제였다.
Disney와 Pixar가 함께 개발한 CAPS는 그 전환의 사례다. 여기서 수작업을 디지털화했다는 설명을 모든 그림을 즉시 3D로 바꿨다는 뜻으로 읽으면 부정확하다. 컴퓨터역사박물관의 설명처럼 전통적인 손그림 애니메이션에 컴퓨터 채색을 결합한 작업도 이 역사에 포함된다. 카첸버그는 《미녀와 야수》의 무도회 장면과 《라이온 킹》의 질주 장면 등을 통해 새로운 제작 기술이 공간과 움직임, 감정 표현의 범위를 넓혔다고 평가한다.
완전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전환에는 별도의 고통이 있었다. 《토이 스토리》가 컴퓨터로 만든 장편도 관객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인 뒤 DreamWorks 역시 손그림 애니메이션을 접는 선택을 했다. 카첸버그는 그 결정을 옳았다고 보면서도 평생 일한 분야에서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어떤 예술가는 새 도구에 적응했고 어떤 예술가는 그러지 못했다. 도구의 발전을 말할 때 이런 차이를 지우지 않는 것이 이 회고의 중요한 조건이다.
추론과 창작을 나누는 관점의 범위
카첸버그는 한 AI 모델에 추론과 창작의 차이를 물었고 그 응답을 논의의 틀로 가져왔다. 이 설명에서 추론은 사실과 전제, 증거를 평가해 제약에 맞는 결론을 찾는 활동이다. 창작은 미리 정해진 하나의 정답 없이 가능한 표현 중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활동이다. 논리만으로 선택을 끝낼 수 없는 자리에서 취향과 직관, 비전이 작용한다.
그는 현재 AI의 강점을 분석과 최적화, 패턴 대응에 두고 인간 창작자의 공감과 헌신, 우연한 발견과 표현 의도를 강조한다. 작품처럼 보이는 결과를 만드는 능력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창작 행위를 구분하는 입장이다. 다만 이는 카첸버그의 철학적·산업적 해석이며 모델 평가나 인지과학 실험으로 확인한 구획은 아니다. AI가 언젠가 그 간극을 좁힐 가능성도 글에서 열어 둔다. 인간의 취향을 현재 AI가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과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다르다.
협상의 대상은 도구를 쓰는 조건이다
카첸버그는 기술 기업에 창작자를 제품 설계 단계부터 포함하라고 요구한다. 그 조건이 크레딧과 동의, 보상이다. 창작자의 작업을 바탕으로 도구를 만들면서 그들의 판단과 기여를 비용 없는 재료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할리우드에도 AI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어떤 조건에서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힘을 쓰라고 요구한다. Steve Jobs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강조한 말을 인용하는 것도 두 집단의 협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런 조건이 실제 계약에 들어가는 예는 2023년 WGA 협약 요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협약은 회사가 작가에게 AI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고 제공한 자료에 AI 생성물이 포함됐다면 알리도록 정했다. 작가는 회사의 동의와 정책 준수 아래 AI 사용을 선택할 수 있고 AI 생성물을 근거로 작가의 크레딧이나 협약상 분리 권리(separated rights)를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당시 협약의 적용 대상에 관한 규정이며 모든 창작물에 적용되는 일반법이나 현재의 전체 계약 조건을 뜻하지 않는다. 카첸버그의 원문이 사용한 상대적인 파업 시점 대신 확인 가능한 협약 연도를 기준으로 구분했다.
카첸버그는 비용과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영화와 실험이 늘고 새로운 이야기 형식도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의 유성영화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그 낙관론의 근거로 삼지만 이번 글은 일자리 순증이나 수익 배분을 계산하지 않는다. 동의 절차와 보상액, 크레딧의 기준을 구체적인 계약으로 설계하는 일도 남아 있다. AI 사용 여부만을 묻는 논쟁을 지나 창작자의 기여에 어떤 대가와 권한을 부여할지 협상하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참고 자료
Jeffrey Katzenberg — The World is Changing: AI For Creativ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