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seob'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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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재능을 어제에 묻을 수밖에 없다 — 읽기 노트

AI를 발전시키는 커널 개발자가 자신의 숙련과 사랑하던 일의 상실을 마주한 글을, 생계와 애정의 차이 및 개방형 AI에 대한 문제의식 중심으로 읽는다.

나는 내 재능을 어제에 묻을 수밖에 없다 — 읽기 노트

TL;DR

  • 이 글의 불안은 실직 가능성만을 향하지 않는다. 시대에 적응해 생계를 지키더라도 사랑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고백이다. 변화에 살아남는 능력으로 상실감까지 없앨 수는 없다.
  • 더 좋은 커널을 만들수록 자신을 대체할 모델도 빨리 발전한다. 글쓴이는 그 모순을 알면서도 최적화의 즐거움과 경쟁 때문에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기술 발전에 대한 자부심과 두려움이 같은 사람 안에 함께 있다.
  • AI를 이용해 성과를 내는 능력과 손으로 작업하며 얻던 만족은 다르다. 뜨개질 장인이 기계를 잘 다루게 되어도 창가에서 천천히 작업하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유가 이를 설명한다. 원문은 이 상실을 새로운 기회라는 말로 덮지 않는다.
  • 개인의 슬픔은 다음 세대의 학습과 AI 접근권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가장 강한 지능이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미래를 경계하며 저렴하고 개방된 AI를 지지한다. 이것이 자신을 대체할 기술을 계속 만드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잘할수록 자신을 밀어내는 기술을 만든다

원문의 글쓴이는 DeepSeek v4.1의 주요 어텐션 커널을 작성한 개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번역문의 각주는 그 범위를 head dim = 512인 MQA attention으로 한정하고 인덱서는 다른 동료들과 그들의 에이전트가 맡았다고 밝힌다. 성공에 대한 자부심은 분명하다. 동시에 더 빠른 커널이 학습과 추론을 가속해 자신을 대신할 AI도 더 빨리 발전시킨다는 모순을 본다.

그런데도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에는 계산과 애정이 섞여 있다. 자신의 손으로 성능의 한계를 밀어내는 순간이 즐겁고 숙련의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자랑스럽다. 혼자 개발을 늦춰도 다른 회사의 모델은 계속 발전한다는 판단도 있다. 변화에 반대하면 원래의 일을 지킬 수 있다는 쉬운 출구가 없기에 경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결과도 함께 만들어 낸다.

생계를 지키는 것과 사랑하던 일을 지키는 것

그는 경험과 판단력으로 다음 역할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지켜 주는 것은 생계이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애정까지는 아니다. 한국어 번역문의 “‘일자리를 잃지는’ 않겠지만, ‘하는 일은 바꿔야’ 할 것이다”라는 구분이 글의 중심이다. 적응에 성공하는 미래와 좋아하던 일을 잃는 미래가 동시에 성립한다.

커널을 직접 설계하는 사람에서 에이전트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옮겨 가도 기존 전문성은 쓸모가 있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일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저자는 닫지 않는다. 다만 더 생산적인 역할을 얻는 일과 오후 내내 직접 코드를 다듬는 기쁨을 보존하는 일은 같지 않다. 이 글은 뒤처질까 두려운 사람의 탄식만이 아니라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사람도 겪는 이별을 다룬다.

뜨개질 장인의 기계가 되돌려 주지 못하는 것

뜨개질 장인의 비유는 손으로 하는 작업이 남겨 주던 시간을 보여 준다. 좋은 스웨터를 더 빨리 생산하는 기계가 등장하면 장인도 그것을 쓰게 되고 오랜 경험 덕분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창가에서 조용히 실과 바늘을 움직이던 즐거움은 생산성의 향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결과물의 품질이 유지되더라도 그 결과를 만드는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글쓴이는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그 변화가 아프다는 감정을 함께 남긴다. 이사를 하며 살던 집의 기억과 헤어지기 어려웠던 경험도 이별의 감각에 겹쳐진다. 숙련을 쌓으며 만든 정체성과 일상의 리듬을 내려놓는 데에는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슬픔을 인정하는 것이 기술의 발전을 부정하는 태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는 무엇을 익히고 누가 지능을 가질까

개인의 상실에서 다음 세대의 학습으로 시선이 옮겨 간다. AI가 과제를 대신하면 학생은 결과물을 얻는 동안 시스템 구성과 추상화, 미래 요구를 고려하는 판단을 충분히 연습하지 못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역량이 과거의 특정 기술처럼 덜 중요해질지, 여전히 핵심으로 남을지 묻는다. 후자라면 미숙한 사람이 더 많은 코드를 더 빨리 쌓는 위험도 커진다는 우려다.

마지막에는 지능의 소유와 접근권이 등장한다. 저자는 공산주의로 묘사한 풍요의 미래와 소수 기업이 강력한 AI를 독점하는 사이버펑크적 미래를 대조하며 후자를 강하게 경계한다. 과장임을 밝히면서 Anthropic에 최첨단 지능이 집중되는 상황을 히틀러의 원자폭탄 선점에 견주는 극단적인 비유까지 사용한다. 이는 저자의 정치적·윤리적 불신을 드러내는 표현이며 기업의 실제 행위를 입증하는 사실 진술로 읽을 수는 없다.

그가 DeepSeek에 남는 이유는 가장 강한 지능이 누구에게나 저렴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강력한 AI를 연구하고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작업을 그 믿음의 실천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밀어낼 수 있는 기술을 계속 만드는 선택은 이 믿음과도 이어진다. 개인에게는 잔인한 변화지만 그 힘마저 소수의 전유물이 되는 미래는 막고 싶다는 태도다. 글은 상실감을 해결했다는 선언 없이 더 평안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끝난다.

참고 자료

Wonjae (Dan) Kim — [번역] 나는 내 재능을 어제에 묻을 수밖에 없다 — 이 노트는 한국어 번역문 전체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원문 계정과 2026년 9월 14일이라는 발행일도 번역 페이지의 안내를 따른다.

intlsy 的狗窝 — 我不得不把才华埋葬在昨天 — 중국어 원문은 접근 검증 화면으로 연결되어 본문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원문 출처는 본문의 Sourc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